- 저자
- 정지음
- 출판
- 민음사
- 출판일
- 2022.10.07
안녕하세요! 일주일만에 쓰는 책 리뷰입니다.
제가 이번에 읽은 소설은 정지음 작가의 <언러키 스타트업> 입니다. 정지음 작가는 <젊은 ADHD의 슬픔>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ADHD를 고백하며 많은 독자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건네 준 작가인데요. 에세이를 주로 쓰는 작가였는데 소설책은 어떨까, 했지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정지음 작가의 특유의 재치있는 문체가 잘 드러나는 소설이었어요.
언러키 스타트업은 '도대체 이딴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지?' 싶을 정도로 언러키한 스타트업 회사에 다니고 있는 김다정 주임이 주인공인 소설입니다. 막장에 아무 여자에게나 추태를 부리는 이상한 대표와 함께 일하면서도 어떻게든 정신줄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직원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요. 읽으면서 너무 슬프고(?) '직장인의 삶이란 다 이런 것인가...' 싶으면서도 유쾌해서 깔깔 거리며 읽은 작품입니다.
책 속의 문장
- 진정한 용사는 사장님과 싸우는 게 아니란다.
- 그러면?
- 출근을 그만두고 싶은 자기 자신과 싸우는 거지.
- 오잉.
- 다정아, 언니는 네가 사장님보다는 돈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음 좋겠어. 애초에 돈 자체가 더러워서 돈 버는 일도 더럽고 치사한 거거든. 앞으로도 네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돈을 벌고자 한다면, 결국 이 정도 더러운 꼴은 감수해야 할 거야. 명심해. 꽃밭에서는 절대로 돈이 나오지 않아.
- ...........
- 돈 나오는 곳은 전부 시궁창이야. 자본주의 사회의 절대 진리지.
위 두 단락은 힘든 직장생활에 위로가 되어줄 것 같아 적어보았습니다 ㅠㅠ 별 일없어도 너무나 가기 싫은 회사...
불쾌한 흥분에 가득 차 원래 거무죽죽한 얼굴이 시뻘개진 채였다. 사람이 어쩌다가 저렇게 달걀 장조림에 실수로 찍 쫘버린 케찹 같은 안색을 갖게 된 것일까?
정지음 작가의 재밌는 표현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라 가져왔습니다. 다른 책도 보시면 재밌는 표현들이 많아요. 비유를 되게 유쾌하게 한다고 할까..?
취업 준비생 시절의 나는 캔디형 소녀가 힘날 일 없어도 불굴의 의지로 힘을 쥐어짜는 콘텐츠에 절어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 속 성장 서사에 감화되어 나도 세상에 대한 예습을 마쳤다고, 나갈 준비가 되었다고 착각했다. 종국에는 시련만이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 줄 거라는 괴상한 성장론까지 품게 된 후였다.
대표들 마법의 주문은 '빨리빨리', '싸게싸게' 였지만, 일이란 정직했다. 빨리빨리 싸게싸게 만든 것들은 그저 그만큼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여길 왜 다니고 있는 것인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카드값 고지서에 적혀 있었다. 내가 희망찬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질러 버린 과거를 수습하며 사는 인간이라 그렇다. 하지만 밥 먹고 술 먹고 옷 입고 사는 게 그리 큰 죄인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었다.
통증과 치욕에 떠는 박국제를 보며 이런 촌극을 상영하는 곳은 역시 회사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조금쯤 인생을 긍정하게 되었다. 삶은 부당하지만 가끔씩 아주 멋진 인과응보를 보여주었다.
온전한 내 편 같은 건 환상일지도 모르겠어. 나 스스로 나의 위로가 되어야 해. 생각하다 스르륵 잠이 들었다.
직장인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걸까? 이 질문을 하면 수진 언니나 지구는 '월급날'이라고 말한다. 혜은 씨는 단연코 '주말'이란다. 그러나 돈은 사라진다. 주말은 반드시 월요일을 동반하기에 잠깐의 응급처치에 지나지 않는다. 내 생각에 직장인이 행복을 감지할 때는 더 불행한 나락으로 처박혔을 때 뿐이다. 불행의 끝까지 내몰려 그나마 살 만했던 과거를 복기할 때.
'차라리 예전이 나았지.'라는 너절한 그리움 속에서만 행복이란 허상을 맛볼 수 있다.
저 볼기짝 같은 싸대기 한 대만 쳐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내일채움공제 만기가 한참이나 남았고, 월급날마다 꼬박꼬박 엄마에게 생활비를 부쳐야 하며, 동생 용돈도 조금 쥐여 주고 남은 돈으로 내 원룸 월세나 교통비, 통신비도 해결해야 하니까 말이다.
인간들이 그렇더라. 왜냐하면 자긴 불행하거든. 거지 같은 회사 당장이라도 때려 치우고 싶은데 어거지로 다니고 있거든. 그래서 회사 생활 행복해 죽겠다는 사람만 보면 개심보가 튀어 나오는 거야. 악플도 좋은 회사 에피소드에 제일 많아. 진짜 생트집 잡아서 오만 걸로 패더라고.
갑을 전쟁도 엄연히 '전쟁'이라구요!
그 말을 오래 곱씹다가 비로소, 전쟁의 함정을 깨달았다.
싸움에는 늘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승자를 숭배하고 패자를 멸시하지만, 사실은 덜 다친 쪽과 더 다친 쪽으로 나뉠 뿐이었다. 그렇다면 진짜 전쟁이란 서로간의 싸움만이 아니었다. 양껏 싸운 후 파괴된 것들의 복구. 바로 그것까지가 진정한 전쟁이었다.
회사생활의 긴장감을 조금 늦추고 싶으신 분들, 간만에 힐링하고 싶으신 분들은 마지막에 통쾌한 웃음을 선사하는 이 소설을 추천드립니다. 위에 적은 문장들과 다르게 재밌는 부분이 아주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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